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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생활정보

동지팥죽을 먹는 유래에 관한 설화.

by SimpleWorld StoryFeed 2019. 12. 22.

동지팥죽을 먹는 유래

동지팥죽

역사

24절기의 하나인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로 예부터 세시명절로 여겨왔다. 조선시대에는 동지를 작은 설, 곧 아세(亞歲)라고 했다. 이는 중국의 고대 역법에서 동지를 세수(歲首)로 하던 것의 유습으로 보기도 한다. 동지팥죽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설날의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곧 설의 잔재이다.

중국의 고대 역법

 

우리나라에서 팥죽을 먹었다는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익재집(益齋集)』에 동짓날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적소두(赤小豆)로 쑨 두죽(豆粥)을 끓이고 채색 옷을 입고 부모님께 장수를 기원하며 술을 올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과 관련이 있지만 동짓날 팥죽을 먹는 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중국 세시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기록을 인용할 따름이다.

익재집(益齋集)

줄거리

『형초세시기』에 기록된 동지팥죽의 유래담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는데 내용은 지극히 짧다. 옛날 공공 씨(共工氏, 요순시대에 형벌을 맡았던 관명에서 비롯한 성씨)에게 바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 이 유래담을 통해 팥이 예전부터 악귀를 예방하는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변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다소 확장되어 팥죽과 아이를 관련시킨 이야기가 전해온다. 동지는 드는 시기에 따라 별칭이 있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는데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아이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동지팥죽 유래와 관련이 있다. 즉 동지팥죽은 역질이 된 아이 귀신을 쫓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축귀행위가 자칫 집안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처 탈이 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팥죽 유래담은 동지팥죽이 벽사의 기능을 한다는 신앙성을 말하고자 부연(敷衍)된 이야기이다.

동지팥죽

분석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차례를 지낸 다음 집안을 수호해 주는 주요 가신(家神)에게 올린 후 가족이 먹는다. 그리고 차례상에 올리기 전,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국물을 떠서 대문이나 담, 집 앞의 고목 등에 뿌리는데 붉은 팥이 벽사(辟邪)와 축귀(逐鬼)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 예방하였다.

동짓날 가신 

특징

팥죽은 다른 때에도 먹을 수 있지만 동짓날 먹는 팥죽은 명절식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민속에서 붉은 색은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여기는데, 동짓날 팥죽은 그 기능의 강도가 한층 더해진다. 또한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는 통과의례 음식의 의미도 있다.

동지팥죽

출처

高麗史, 東國歲時記, 荊楚歲時記.

고려사
형초세시기
동국세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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