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마빡 2014 05 01

딴지일보 마빡 2014 05 01

2014. 05. 01. 목요일 가만히 있으라 아, 웃을 때는 아니지. 29일 오후 세 시,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집회 공지가 올라왔다. 29일까지만 해도 글 URL 직접 외부 링크가 갑자기 막혀서 작성자 용혜인검색 결과 링크가 SNS로 공유되고 있었는데, 30일 밤 열 시 현재 작성자로 검색을 해봐도 전혀 검색되지 않고 있습니다. 용혜인씨는 본인의 글을 삭제한 적이 없습니다.고 확인해주셨습니다. 내사용 목적 내용이지만 일단 저 공지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딴지일보 창간 1995 200
딴지일보 창간 1995 200

딴지일보 창간 1995 200

1995년 11월 사표를 낸 후 10여 평의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내고 플래넷PlaNET이라는 인터넷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체에서 실시하는 해외연수가 획일적이고 흥미가 떨어지는 점에 착안, 배낭여행 형식으로 현지 가이드 대신 인터넷을 통해 여행정보과 일정을 제공하는 계획을 고안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기업이 해외연수를 휴가 개념으로 여기는 풍토에 불황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자체적으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꼼수 출연과 그 이후 2011 현재
나꼼수 출연과 그 이후 2011 현재

나꼼수 출연과 그 이후 2011 현재

이 나는 가수다. 품평에 모티브를 얻어, 알고 지내던 정봉주의 제안으로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해서 2011년 런칭한 나는 꼼수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인터넷에서 괴상한 소리나 하던 아싸 털보 아저씨가 아닌 주류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대안 언론인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으로 2016년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대안 언론인이 아닌 정규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여러 저서 등과 활동을 볼 때 상당히 정치추구하는 인물이며 정치논리로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스탠스는 본인은 지속해서 중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상 친문성향민주당, 국민참여당 쪽으로 평가받으며, 다른 그들이 주장과 행위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면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2011년 10월 24일 MBC 라디오 개편과 더불어 색다른 상담소가 폐지됨에 따라 해당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나는 꼼수다.

2014. 05. 08.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요즘처럼 수퍼맨 같은 힘을 가진 영웅을 바랐던 적도 없을 겁니다. 그가 나타나서 저 가라앉는 배를 훌쩍 들어올려 준다면,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모두가 찰과상 정도만 입고 무사히 나와준다면 어느정도로 좋을까. 하지만 다들 이것이 헛된 상상이란 걸 압니다. 또 그런 수퍼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대신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엄청난 돈과 사람을 거느린 정부가 그 역할을 일부나마 해 주길 바라고, 그래야 마땅합니다.

국가와 정부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힘으로는 운영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조직적으로 대신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고, 그 명분으로 권력을 위탁받고 세금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은 정부의 역할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저 수퍼맨 이야기를 하렵니다.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003 201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003 201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003 201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 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집니다. 자체적으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고정하다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배포 있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 편. 의외로 이런 데 나와서는 씨바 같은 욕을 안 합니다. XX는 합니다.

대학과 포스코 재직 시절 1990 199

고등학교 당시 우등생이었는데 서울대학교를 목적으로 삼수까지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자체적으로 술회한 바에 의하면 사수해서 서울대를 가고 싶었으나 군대 때문에 홍익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삼수를 했을 당시, 탈락하면 입영통지서가 발급되고 그러면 더 이상 병역을 미룰 수 없어서 얄짤없이 군복무를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직업훈련원폴리텍대학교 등이 병역을 강제로 1회 연기를 시켜주고 이런그런 식으로 연기가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교 재학이 하나의 병역연기 방법이었다.

훗날 본인의 저서 건투를 빈다p.2629에서 서울대에 갔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능숙한 걸 가지고 자체적으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어린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며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다고 했다.

작업 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

자주 묻는 질문

딴지일보 창간 1995

1995년 11월 사표를 낸 후 10여 평의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내고 플래넷PlaNET이라는 인터넷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궁금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꼼수 출연과 그 이후 2011

이 나는 가수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003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